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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는 필요 없다

머릿속에 전하고픈 메세지는 많은데 그걸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몰라서 애를 먹었다. 그래서 대사로 상황을 보여줘야 하는 걸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상황을 서술하는 데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소설이라기보다 논설문에 가깝다고 비판을 받아도 할 말 없을 것 같다.

교수님은 신선하다고 평해주셨고.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남학생들이 의외로 동의해주어 고마웠다.

( 블로그에 복사해서 붙이니까 들여쓰기 효과가 사라지네. 문단도 제 멋대로 나눠지고.; )


<왕자는 필요 없다>

한국은 머저리 같은 남자들에게 천국인 땅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경제권과 사회 고위층 직을 차지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집에선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닭다리를 차지한다. 강간을 해도 죄가 없다고 감싸주는 관대한 사법부도 있다.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 땅이란 말이 돌며, 식당에서 갈비를 뜯다 성욕이 일면 손쉽게 여자를 부를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오만함은 하늘을 찌른다. 여성이 자신의 소유물이나 되는 듯 착각하는 것이다. 외국 남자와 교제하는 여자만 봐도 몸을 파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오만함의 절정이다. 결정적으로 여자를 먹여 살려야 한다거나 지켜주고 보호해줘야 한다는 쓸데없는 소명의식까지 갖고 있다.

그러나 이 꽉 막힌 풍경도 새로운 세대의 똑똑하고 당찬 여자들을 막지는 못한다. 당장의 큰 변화는 없지만 차츰 그녀들은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저녁마다 작은 무리를 이루어, 어릴 적 꿈꾸던 백마 탄 왕자님이 나오는 동화가 얼마나 거짓되고 잘못된 것인지 이야기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녀들에게 허황된 신데렐라의 꿈은 단골 소재고, 백설 공주를 흑설 공주로 재구성한 적도 있다. 한 여자가 오늘은 <라푼젤>이 어떠냐며 운을 뗐다. 우뚝 솟은 탑이라니 남근을 형상하는 것 같은 데다, 그 자리에서 왕자의 도움만을 기다리는 게 불만이라는 것이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여자가 그 긴 머리만 봐도 답답하다고 말을 보탰다.

이런 이야기의 기본 주제는 변하지 않는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우리 주변에 여전히 암약하고 있는 가부장적인 남자와 남자들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지만 독립적이고 매력적인 여자가 등장한다. 남자는 처녀를 고집하고, 못 생긴 여자는 죽어야 한다는 등 폭언을 일삼는다. 이것을 바라보던 여자가 기가 막힌 작전을 펼침으로써 한 방을 먹여 상황이 역전된다. 같잖은 자존심을 목숨같이 아는 남자는 창피해하고 좌절감에 사로잡힌다. 카페에 모여 있던 여자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이 공상적인 이야기에서 위안을 얻는다.

현실을 뒤집는 이런 환상적인 이야기는 의외로 많다. 그러나 대부분 극단적인 내용이라 남자들의 반발을 사기 때문에 발표할 수가 없다. 그래도 개중에 돋보이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 소개하려 한다. 만일 당신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에 공감하고 결말에서 잠시 만족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왕자는 필요 없다’라는 제목의 이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라푼젤은 서울 근교의 자그마한 임대 아파트에 산다. 물론 여기는 한국이니까 ‘라푼젤’은 본명이 아닌 인터넷 아이디다. 독일 현지보다 한국에 더 많다는 독어독문학과를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전공했다. 독일 내에서도 요즘은 거의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장된 언어라지만, 《데미안》같은 희대의 걸작을 원어로 읽는 낭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선택했다. 결국 비전을 기대할 순 없었지만, 성실하게 학점을 관리했고 토익 800점대를 유지해 간신히 비정규직으로 취직했다. 그러나 그 자리도 쉽지만은 않았다. 분명 법에서 보장해주는 생리휴가를 사용한 게 문제였을까. 비계 덩이가 배를 불룩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정수리까지 타고 올라가 머리를 벗겨낸, 그 과장이 회식 때 허리를 감싼 것에 지금 이게 뭐 하시는 짓이냐고 불쾌함을 표시한 게 잘못일까. 재계약을 앞두고 해고 통보를 받았다.

집에 들어앉게 된 라푼젤은 살 길이 막막했다. 소위 스물다섯이면 꺾인 나이라는데 조급함이 몰려왔다. 이도저도 안되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결혼이나 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떠올랐지만, 맞선 시장에 자신의 몸뚱이를 내놓아야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골머리를 앓다 컴퓨터를 켰다. 미니홈피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다, 친구들이 샤넬 백을 들고 찍은 사진들을 올리는 곳에 이런 속사정을 내비칠 수 없어 그만뒀다. 그 계집애들이 속물이라고 무시하면서도 괜한 패배감에, 혼자만 고립된 것 같은 기분을 뭉뚱그려 표현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갇혀있다. 나를 묶어 둔 자 누구인가. 벗어나고 싶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유치한 글을 스크랩해온 것처럼 적어뒀다.

시간이나 때울 요량으로 오랜만에 채팅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럴싸하게 ‘나는야 높은 탑에 갇힌 라푼젤’ 이란 방을 개설하고 대화상대를 기다렸다.

[ 왕자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안냐세요 *^^*”
라푼젤은 뚱한 표정으로 입을 씰룩이고 있었지만 습관대로 이모티콘과 채팅어를 사용했다.

“응. 안녕 ㅋㅋ ”
왕자는 다짜고짜 말을 놓았다.

“닉네임이 참 멋지네요. 잘생기셨나 봐요.”

“당연하지. 장동건 닮았단 소리 많이 들어.”

왕자라는 별명은 그의 엄마가 그를 부르던 이름이다. 덕분에 ‘나 정도면 평균 이상이지 뭘’이란 생각을 갖고 산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오징어 괴물에 가까우나 절대 제 눈엔 그리 보이지 않는다. 키만 조금 컸으면 세상 모든 여자들이 제 것이었을 텐데 라는 생각도 한다.

“그렇군요.^^”

“내 자동차 사진 볼래? 남자라면 벤츠 정도는 끌어줘야지. 한강 안 달릴래? 태워줄게”

“괜찮아요.^^;”

왕자는 ‘꽤 상냥하네. 고분고분 하겠는걸’ 흡족해하며 신나게 말을 해댔다.

“조만간 사업도 크게 해볼 생각이야. 내가 모시는 형님들이 다 잘나가서 밀어주신대.”

“돈이 많으신가 봐요.^^;;”

“내 여자한테 선물 사주고 책임질 정도는 되지”

“그렇군요.”

라푼젤은 애초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입에 발린 소리로 적당히 대꾸했다. 하지만 왕자가 말을 부풀려가며 이렇게 노력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이미 방에 들어오기 전에 라푼젤이 올려놓은 프로필 사진을 확인했다. 청순한 이미지로 무척 예뻤다. 그에게 여자란 예쁘면 그만인 동물이다. 그래서 이 여자를 정복하고 말겠다는 의지에 불타오르는 것이다. 그 사진이 다이어트 자극용으로 모델 사진을 올려둔 것이란 사실은 미처 모른 채.

왕자의 일방적인 대화이긴 했지만 그런대로 이어져나갔다.

“과일 잘 깎아? 내 여자라면 그 정도는 돼야하거든”

“글쎄요^^;;”

대화만 나눴을 뿐인데도 왕자는 라푼젤이 벌써 자기 여자라도 되는 양 착각을 했다. 번번이 차이던 터라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발악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채팅은 왜 하는 거니?”

자기야 어떻게든 여자를 얻으려 한다지만, 저 정도 미모의 소유자가 이런 곳에 있다는 게 이해되질 않았다. 혹여 이런 데서 아무나 만나는 여자면 품행이 불손한 거라 생각해서 마다할 생각이었다.

“그럴 만한 일이 있는데.. 아... 숨 막혀라.. 하지만 말할 수 없어요.”

한편으로 왕자는 채팅 창 밑에 그녀의 미니홈피를 깔아놓고 염탐을 했다. 보통 아이디를 통일해서 쓰기 때문에 채팅 아이디를 가지고도 검색이 가능했다. 남자관계 등 알아볼 것이 많았다. 클럽에서 술 마시고 노는 사진이 있으면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일촌공개인지 별 다른 수확은 없었는데, 그 때 의미심장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부터 무슨 일이 있어 보이는 그녀의 태도와 상황이 묘하게 들어맞았다. 오해하기 딱 좋았다.

왕자가 무슨 일이냐며 재촉해서 묻자, 라푼젤은 나중에 또 보자는 말을 남기고 채팅 방을 나가버렸다. 그에게 이만한 기회는 흔치 않아 아쉬움에 속이 탔다.

“대줄 것도 아니면서 줄 것처럼 굴었냐, 미친년”
왕자는 연신 욕을 해대고 담배를 빡빡 펴댔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답답하단 말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말처럼 들렸다. 왕자 자신만이 구원의 손길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그녀를 찾아가 구해내야 했다.

“나는 남자다. 내 여자 하나 쯤은 내 손으로 구해야 존나 가오가 살지.”

왕자가 누구던가. 악명 높은 대한민국 네티즌이다. 누가 무슨 발언을 했다더라 할 때마다 ‘신상을 털고’ 의기양양해 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집주소를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천재적인 해킹 실력을 가진 건 아니다. 남아 도는 시간과 집요함만 투자하면, 그녀의 아이디로 구글 검색의 검색 끝에 그녀가 무심코 남기고 다닌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푼젤이 주문한 인터넷 쇼핑몰 주문서를 발견했다. 착장사진이란 핑계로 여러 여자들의 몸매를 구경할 수 있어 왕자가 자주 찾던 곳이었다.

왕자는 벗어 둔 옷들의 주머니 탈탈 털고 침대 밑도 샅샅이 뒤져 가진 돈을 모두 챙겼다. 라푼젤을 구해서 도망을 치든 뭘 먹이든 하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 계산에 그런 의도만 담겨 있을까.

“아, 이 정도 들이면 적어도 가슴은 만져야 되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현관문을 나섰다.

왕자는 라푼젤의 동네까지 걸어가면서 자신이 구해주면 얼마나 생색낼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아이도 낳아줄 테고, 우리 부모님도 모시라고 해야지. 우리 집 제사가 일 년에 여섯 번인데, 군말만 했다봐라.’

한편, 라푼젤은 창밖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왕자가 라푼젤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외벽 페인트가 거의 벗겨져 있었지만 ‘캐슬’이란 아파트 이름은 알아볼 수 있었다. 지은 지 오래 된 아파트라 그런지 높이도 낮고, 밖으로 난 베란다와 환풍기만 잘 타고 올라가면 라푼젤의 집인 2층에 침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왕자는 ‘라푼젤이여~ 머리칼을 내려다오’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계단으로 올라가 대문을 두드릴 생각부터 하지 않는 건 왕자가 정말로 자신이 동화에 나오는 왕자님이라고 착각한 것일까.

베란다를 통해 들어가니 라푼젤이 맨송맨송한 얼굴로 왕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마치 이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혹시 즐거운 대화였다고 끊는 인사가 아닌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은 이 일을 예견하고 한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왕자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왕자에게 앞에 서 있는 여자는 라푼젤이 아니다. 자신이 기대하던 긴 생머리의 어여쁜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왕자가 벙쪄있는 동안, 벌건 대낮에 도둑이 벽을 타는 모습을 본 동네 주민들은 신고를 했다. 이윽고 경찰이 들이닥쳤다. 갑자기 라푼젤은 눈물을 쏟아내고 온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스토커예요. 늘 나를 감시하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가둬뒀어요.”
혼신의 연기였다.

“진정하세요. 저희가 연행해 가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경찰은 특수강간을 의심하며 상흔 등을 찾으려 했다.

“뭐라고 씨발? 이게 뭔 개소리야. 미치고 팔짝 뛰겠네. 내가 널 구하러 온 거라고! 아니, 너 말고 라푼젤을!”
왕자는 여자 한 번 경찰 한 번씩 번갈아 쳐다보며 자신의 무죄를 호소했다.

다음 날 라푼젤은 피해자 신분으로 사건 진술을 위해 출두해달라는 전화를 받았으나 거부했다. 그 뒤에 경찰이 왕자를 풀어줬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라푼젤이 그런 남자들 때문에 자신이 탑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라푼젤을 탑에 가두는 마녀란 다름 아닌 ‘기사도 정신’을 표방하는 남자다. 공주는 기사도 정신에 의해 존중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철저하게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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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위원회 하나 바라보고 지지하는 정당과 열정적이고 순수한 시민들이 모여서 의미있는 단체. 두 배너가 공존하는 게 웃기기 한데, 야권단일화를 바라는 건 아냐. 진보신당은 독자성장 하시고, 나머지 민주 세력은 부동층을 노리세요.